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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出)력, 책쓰기/<週刊 태이리> 연재

<週刊태이리>제3호‖한남동과 '서태지와 아이들'

한 곳에 오래 살면 거기에 엉킨 이야기가 나이테만큼 늘어납니다. 대부분은 잊고 말지만, 가끔은 질기게 기억나는 것도 몇 개 있습니다. 하도 여러 번 살을 붙여서, 이제는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신하긴 어려운 그런 이야기, 지금은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습니다. 아마 이런 건, 누구도 잘 모를 게 분명합니다. 이젠 나도 조금씩 흐릿하니까요. 이건 '한남동'과 '맹장 수술'과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는 십대의 의무쯤으로 여겨졌다.

#1. 난 앓아요, 급성맹장염

중학교 1학년 여름 방학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남산도서관에 가려고 단국대(지금의 한남더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명치끝부터 배꼽 오른 쪽이 바늘을 삼킨 것처럼 쑤셔 왔습니다. 야식 때문인지, 아니면 뱀이 똬리라도 트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습니다. 술도 안 마실 나이였는데 며칠 전부터 꺽꺽 구역질이 나서 체한 줄만 알고, 아버지가 건네준 애꿎은 활명수만 두 어 병 마셨습니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배탈이 아니라는 게 점점 확실해졌습니다. 

큰 길 한복판에서 페이드아웃처럼 시야가 점점 좁아졌습니다. 배를 움츠리고 그 자리에 철퍼덕 쓰러지고 말았죠. 죽음의 공포를 얼마간 흐릿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눈 뜬 건 순천향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낑낑대고 신음하는 걸 누군가 업고 왔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고마운 그 이름과 얼굴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진정제를 투여하고도 복통이 간질병처럼 주기적으로 덮쳐 왔습니다. 무서웠어요. 그때마다 “어서 수술을 시켜 달라!”고 비명을 질러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 이러다 저 병사처럼 사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병명은 충수염, 쉽게 말해 급성맹장염이었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니 된똥을 푹 싸고 나온 것처럼 거짓말처럼 안 아팠어요. 방귀를 뀌어야 퇴원할 수 있다고 하셔서, 연습 삼아 힘을 줘 봤는데 실밥이 꿈틀거리는 거 빼고는 괜찮았습니다. 그때 TV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이주노가 맹장수술을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지금은 전설이 됐지만, 그 시절의 서태지는 ‘뉴키즈온더블록’을 그들의 노래 제목처럼 ‘스텝바이스텝’ 사뿐히 즈려밟으며 막 등장한 슈퍼스타였습니다. 할 수 있다면 그림자라도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 남녀의 맹장 위치가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다.

#2. 동병상련, 진격의 팬심

‘서태지와 아이들’의 작업실은 한남동 유엔빌리지라고 알고 있었는데, 급히 병원으로 환자를 옮겼다면 역시 이곳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놀라 본관 1층으로 내려가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내 생각이 맞았습니다. 거기엔 안경 낀 서태지와 멜방 바지에 모자를 눌러 쓴 양현석이 ENG 카메라 여러 대에 가려져 얼핏 보였고, 이주노는 침대에 누워 의료진에 둘러싸여 어디론가 실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과 같은 날, 같은 곳이 아파, 같은 곳에 입원했다는 게, 바보 같지만 기분 좋았습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월감마저 들었으니까요. 이런 게 팬심인 건가,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데 스스로 놀라고 있습니다. 


▲ 사진 우측에 ‘1992년 7월 25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다

  몰려든 소녀들이 병원 입구에서 그들의 뒤통수라도 보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환자복을 곱게 차려 입은 저는, 약간은 뻐기는 마음을 애써 누르면서 서태지와 양현석 뒤까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주사를 꼽고, 다른 손으로는 상처를 감싸 안은 채 “저기, 사인 좀”하며 수줍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경호원들과 시답잖은 악수만 두어 번 하고선 멀어지는 서태지를 한참 바라봐야 했습니다.

 
▲ 구로에서 수술하고, 다음날 순천향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간호사에게 조심스레 슬쩍 떠 보니, 자기가 서태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신나서 술술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주노가 입원한 병실이 신생아 분만실과 임산부 관리센터가 있는 ‘모자보건센터’라는 것도 그래서 알았습니다. 눈을 피하기에 딱인 곳이었죠. 그때부터 내가 오늘 수술한 환자라는 것도 잊고 그곳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늘 꼽은 팔에서 피가 역류해 수액을 빨갛게 물들였지만, 그와 만날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3. 거절할 수 없는 제안

탐색 3일차, 의심 가는 곳을 우연히 찾아냈습니다. 산모나 어르신들이 단 한 명도 드나들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 머리 모양의 남녀만이, 색이 진한 선글라스를 끼고 빈손으로 찾아오는 곳. 분유나 기저귀라도 가져와야 말이 되는데, 여기는 그 주변과는 뭔가 달랐습니다. 나를 진료했던 의사와 간호사가 한 쪽 구석에서 나오는 걸 보고 생각은 확실해졌습니다. “여기에 분명 그들이 있다!”

 


▲ 본관도 별관도 아닌, 모자보건센터에 그가 있었다

간호사에게 슬쩍 물어봤어요. “맞죠? ○○○호!” 침묵은 대부분 그렇다는 뜻입니다. 다시 물어 봤습니다. “○○○호, 맞잖아요?” 관심 없다는 듯 혈압을 쟀지만, 평소와 달리 커진 눈이 대답을 대신하는 듯했습니다. 요새 같으면 트위터로 금세 퍼져 병원이 북새통이 될 터였죠. 계속된 추궁에 간호사가 무거운 입술을 뗐습니다. “너도 서태지 좋아해?” 딱 잡았습니다. 

그때 서태지를 좋아하지 않는 10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용돈을 털어 테이프를 사고, CD를 산 건 적어도 내 인생에선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박정현’이었고요. “알려주지 않으면, 매일 거기 갈 거예요. 간호사 누나가 다 알려줬다면서!” 자신의 이름을 불까 걱정이었는지, 환자의 건강이 염려된 건지 그녀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퇴원하는 날 서태지 사인을 열 장 받아주기로.  

방귀가 개선장군의 팡파레처럼 나오던 날, 그녀는 곱게 포장한 상자를 건넸습니다. 약속한 선물, 서태지의 사인이 분명했습니다. 빨간 기와집의 다락방에서 봉투를 몰래 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방금 막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것 같았습니다. 이런 글씨가 ‘메롱’하는 표정으로 절 보며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퇴원을 축하합니다, 서태지 올림”  


▲ 지금 막 내가 그 느낌을 살려 휘갈겨 썼다.

 

▮ 덧붙이는 말 ▮

1. 제1호에서 말씀드린 <한남동 원주민> 소설을 정말로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한남동 이야기들은 그 소설의 부스러기들을 모은 것들입니다. 반응이 나쁘지 않으면 습작 차원에서 몇 개 더 연재하려 합니다. 댓글 주세요.  

2. 한남동 시리즈의 예시는 이 정도 생각합니다. 뭐 늘어날 수도 바뀔 수도 있고요.
▪ 허영만의 <식객>과 한남아파트 ▪ 불타버린 비바백화점과 제일기획 ▪ <논스톱>에 등장한 치맛바람 고딩 동창 H
▪ 트랜스바에서 만난 여러 명의 하리수 ▪ 이태원 삐끼에게 한여름 가죽장갑 산 사연

3. 제2호 ‘누구냐 넌, 스피치라이터’ 이후 추천글이 몇 개 들어왔습니다. 너무 어려워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있고, 평소 생각해본 것들도 있네요. 자료수집이 완료되는 대로 다뤄보겠습니다. 의견 더 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제가 골라 쓰니까.
▪ 제멋대로 숟가락 얻는 몰상식 상사 깨부수기 ▪ 文·洪·安·朴 정치인의 언어, 뭐가 같고 어떻게 다르나 ▪ 아무리 봐도 헛갈리는 맞춤법, 쉽게 배우기 ▪ 스피치라이터와 궁합 맞추는 청와대 사람들은 누구 ▪ 책 3권 쓰고 인생이 달라진 게 있다면 뭐 

4. 아버지가 아프셔서 어버이날 하루 전에 순천향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막내인 내 나이가 벌써 마흔이란 것도, 아버지가 칠순을 두해 넘기셨다는 것도 새삼 알았습니다. 건강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5. 너무 궁금해서 <주간 이슬아>를 구독해 봤습니다. 수필과 소설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연애, 친구, 가족을 소재로 하는데, 문체도 저와는 시작부터 많이 달라보였습니다. 뭔가 흑인재즈 같다고 할까. 암튼 그것과 달라야 한다고 의식 했는데, 어차피 모든 게 다를 테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 있게 써 보겠습니다. (월 9,000원 / 카카오뱅크 3333-0527-66818) 

6. 브런치로 이사했습니다. https://brunch.co.kr/@30story/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