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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라이터

<週刊태이리>제3호‖한남동과 '서태지와 아이들' 한 곳에 오래 살면 거기에 엉킨 이야기가 나이테만큼 늘어납니다. 대부분은 잊고 말지만, 가끔은 질기게 기억나는 것도 몇 개 있습니다. 하도 여러 번 살을 붙여서, 이제는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신하긴 어려운 그런 이야기, 지금은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습니다. 아마 이런 건, 누구도 잘 모를 게 분명합니다. 이젠 나도 조금씩 흐릿하니까요. 이건 '한남동'과 '맹장 수술'과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는 십대의 의무쯤으로 여겨졌다. #1. 난 앓아요, 급성맹장염 중학교 1학년 여름 방학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남산도서관에 가려고 단국대(지금의 한남더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명치끝부터 배꼽 오른 쪽이 바늘을 삼킨 것처럼 쑤셔 왔습니다. 야식 때문인지, .. 더보기
<週刊 태이리> 제2호 ‖ 누구냐 넌, 스피치라이터 바빴네요. 지난주 취임사를 쓰고, 고치고, 쓰고, 고쳤습니다. 축하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고, 노동조합과 인사를 나눴고, 홈페이지 인사말을 바꾸고, 국회와 언론사로 경영서신을 보냈습니다. 무슨 일 하냐는 물음에 ‘스피치라이터(Speech Writer)’라고 답하면, 역시나 “그게 뭐예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옵니다. #1. 축하부터 사과까지 쓴다 스피치라이터는 리더의 ‘말씀’을 씁니다. 행사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연설문’이 제일 많고 대표적입니다. 신년사와 창립기념사, MOU 인사말, 준공이나 개소식 축사, 만찬 건배사까지 여기 넣습니다. 그 다음은 ‘경영서신’입니다. 설이나 추석 즈음 윤리경영 동참을 독려하고, 대표 이취임이나 사업 통폐합 같은 굵직한 변화를 알리는 내용입니다. 요새는 CEO 일상을 소소하.. 더보기
<週刊 태이리> 제1호 ‖ 아무나 모르는 그 한남동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은 내 기억이 처음 시작되는 곳입니다. 유치원부터 초중고의 색 바랜 이야기들이 거기 다 있어요. 한남동이 요새야 제법 으스대지만, 1980년대의 그곳은, 어른이 되고 싶어 조바심이 난 소년 같았습니다. #1. 너무나 다른 것들이 모여 사는 동네 한남동 스카이라인은 완만한 포물선입니다. 왼쪽 위에는 한광교회가, 오른쪽 아래에는 이슬람성당이 양 꼭짓점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비스듬히 서 있습니다. 후암동으로 조금 더 눈을 돌리면, 서울타워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남산 뷰가 완성됩니다. 한남동 언덕에는 낡은 맨션과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어둠이 잦아들면 모두 사라지고 한광교회의 빨간 십자가와 이슬람성당의 하얀색 초승달만이 두둥실 떠오릅니다. 두 종교가 랜드마크의 지위를 놓고 다투는 .. 더보기